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라운 아이즈 (문단 편집) === 6년간의 공백기, 각자의 활동에 주력하는 둘 === 윤건의 갑작스러운 탈퇴에 처음엔 둘의 불화설도 돌곤 했다. 윤건은 자신의 솔로 활동에 전념하여 3집까지 발매를 하였다. 앨범 목록 등 자세한 것은 '[[윤건]]' 항목 참조. 반면 나얼은 상대적으로 더 풍부한 활동을 보였다. [[브라운 아이드 소울]] 1집 [[Soul Free]]의 타이틀곡 '정말 사랑했을까"의 큰 성공을 이룬다.[* 단 1회의 출연도 없이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었다.] 그 이후 나얼은 같은 소속사의 동료들에게 주력을 쏟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[[다이나믹 듀오]]이다.[* [[개코(다이나믹 듀오)|개코]]와 [[최자]]는 신인이 아니라 커빈과 함께 [[CB Mass]]로서 이미 3장의 음반을 발표한 바 있다.] 당시 상황을 설명하자면 [[CB Mass]]로서 활동하던 최자와 개코는 같은 멤버였던 커빈과의 불화로 해체를 하게 되는데[* 이유는 알다시피 [[CB Mass#s-3|어떤 사건]]으로 인해서. 그 외에도 이 사건 하나로 인해 [[에픽하이]]와 [[TBNY]]의 데뷔까지 늦어지게 된다.], 여기서 위약금의 문제가 발생한다. 당시 금액은 4000만 원으로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그 둘에게는 너무나도 큰 돈이었고, 당시 브라운 아이즈의 소속사였던 갑 엔터테인먼트의 박종갑 사장이 꽤 괜찮은 제안을 하게 된다. >'''박종갑(甲엔터테인먼트 사장)''' 니네 음악은 들어보니 괜찮은 거 같애, 계약금은 못 주는데 너희 빚은 다 갚아줄게. 둘은 계약을 했고 Ring my bell을 타이틀곡으로 밀고 있었는데 이대로는 뭔가 부족하다며 나얼을 피처링진으로 붙여준다. 나얼은 선뜻 피처링을 맡아주었고 곡 후반부에서 나얼 본인도 매우 흡족해 할 만한 퀄리티의 애드립을 뽑아내었다. 그런데... >'''나얼''' Ring my bell(애드립 녹음파일) 날아갔을 때 진짜 죽고 싶더라고요 와... > >네이버 나얼 공식 팬카페 Back To The Soul Flight에서 주최한 나얼의 37번째 생일파티 中 개코가 실수로 나얼이 녹음해둔 것을 '''지워버린 것이다.''' 당연히 나얼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말도없이 작업실을 나갔고 다듀는 근처에 포장마차로 데려가 사이다 1병을 사주며 달랬다고한다. 보통 같으면 술을 사주겠지만 나얼은 2000년대 초부터 술을 끊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. 다행히도 더 잘 나왔고 다이나믹 듀오 1집은 나오자마자 대박을 쳤다. 밑의 사진은 2004년 당시 나얼이 자신의 싸이월드에 다이나믹 듀오를 위해 홍보의 일환으로 작성한 글이다. [[파일:다듀 홍보.png|width=600]] 이렇게 성공적으로 다이나믹 듀오를 데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나얼은 자신의 첫 솔로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한다. 2005년 1월 8일 발매된 [[Back To The Soul Flight]]가 바로 그것인데, 타이틀곡은 잘 알려진 나얼의 대표곡 [[귀로(박선주)#s-4.1|귀로]]이며, [[http://entertain.naver.com/read?oid=111&aid=0000003833|도중에 미완성된 귀로 음원이 유출되는등 곤란한 사건이 있었지만]], 당시 한터 차트를 점령하는 큰 성공을 거뒀다. [[파일:리메이크 앨범 시절.png|width=500]] 이후에 [[브라운 아이드 소울]] 2집 [[The Wind, The Sea, The Rain]] 발매후 콘서트도 열곤했다. [[파일:브아솔 2집 발매기념 콘서트.jpg]] 이와 같은 활동으로 완성된 나얼의 음악적 행보는 훗날 컴백할 브라운 아이즈가 성공적으로 귀환하는 데에 있어서 큰 밑거름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